몽치오빠

레알 부처같은 마음

몽여사 2011. 12. 5. 23:31
방금 몽치 이모와 전화로 미주알고주알 대화 나눈 얘기지만,
나중에 우리 몽치가 커서도 두고 두고 읽어보려고 기록해둔다.

저녁답에, 저번 겨울에 사서 한철 잘 깔고 봄에 옆단지에 있는 일반 세탁소에 맡겼던 샤기 카페트를 꺼내서 거실에 깔았다.
깔고 나서 한참 있다 보니, 영 때깔이 작년보다 못하다.
털이 드러누운 부분도 많고, 끄트머리를 보니 털끝이 죄다 작년처럼 기름이 좌르르 흐르는게 아니라 푸슬푸슬 갈라져 있는 것이다.
털이 드러누운 부분은 내가 너무 오랫동안 말아놔서 그런 것도 있다쳐도.. 아무래도 털의 상태가 넘 불량타..
겉으로 보기엔 뭐 별 문제 없어보였으나 자세히 털끝을 보니 작년과는 확실히 다른게 느껴진다..

아, 그때 세탁소에서 가져왔을 때 바로 풀어서 확인했어야 하는데!!! 바보같이 그냥 말아두고 몰라라 했던게 잘못이야!!! 이럼서 나에 대한 분노와 세탁소에 대한 분노가 동시에 차오르기 시작할 때, 털을 밀고 있는 내 손에 뭔가 잡히는게 있었다.
부슬 부슬한 털 속에서 내 손에 잡힌 것은..! 바로 커다란 바늘이었다!!!

아이고 세상에..
애들이 이걸 밟기라도 했음 어쩔 뻔 했어?????
슬슬 차오르던 분노가 대박 폭발해버렸다.
이노무 세탁소를 내가 걍 내일 어째 버리까? 이럼서 부글거리고 있는데,
저녁반 태권도를 다녀온 아들이 해맑게 들어온다.
들어와서 내 인상을 보더니,
엄마 왜 그러세요? 묻는다.

카페트 땜시 성질 났다고 하면서,
너 저 카페트 꼬라지 좀 봐라 그랬더니,
목욕하고 나서 궁뎅이에 수건만 감고 통통 뛰어나오더니 카페트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선
"내가 보기엔 별 문제 없는데?" 요러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나 털이 마구 엉키고 드러누운 부분을 가리키며
"여기여기 봐바... 여기 털이 완전 장난아니잖아? 이거 그래도 엄마가 나름 돈 좀 주고 산건데!!!" 하면서 난리쳤떠니
"엄마, 여긴 작년에도 좀 이랬어요.. 그래서 맨날 내가 털 세우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약간 기가 죽어서는
"그,그래??"(심한 단기기억증에 시달리는 나로서는 내 모든 기억력에 의심이 가기 시작함)

그러다가
"근데 바늘도 나왔어!!!!!"
라고 외쳤더니
"아니, 바늘이 나왔어요? @.@ 얼만한게요? 보여주세요" 신나서 외친다;;;

그래서  " 됐어. 잠이나 얼른 자. 내일 그 세탁소랑 한판 해야겠어"
그랬더니 아드님 하는 말이
"엄마.. 그럼 세탁소랑 싸우실 거에요? 근데 저 카페트 털 누운 건 작년에도 그랬다니깐요.." 라며, 굉장히 시크하고 쿨하게 뱉어낸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그래도 우리집에 바늘이 하나 더 생겼잖아요.. 그거라도 다행이잖아요.."

홉,,, -_-;;;;

순간 열을 내던 내 분노가 무참해지며...
지금까지 부글거렸던 것이 약간 부끄러워지기까지......


바늘이 하나 더 생겼대....
흑흑...

크흙흙흙.....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다.크크크크크크크크ㅡㅋ... 바늘이 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
하... 분노가 사라진다........


그래, 이번 한 번은 내가 참아주지.

왜냐면, 레알 부처님같은 우리 아들이 별일 아니니 참으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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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 하나 더.
어제 기말고사를 앞두고 수학 공부를 시키는데, 6단원(반올림, 올림, 버림 단원)을 계속 틀리며 잘 못 푸는 것이다.
근데 이 단원은 이미 금욜날 단원평가를 본 단원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못 풀다니..
내가 막 열을 내면서, 너 왜 이렇게 못하냐? 너 시험은 잘쳤냐? 내가 보기엔 너 아마 70점도 못 받을 것 같다.
그랬더니, 몽치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제가 70점 이상 받으면 어쩔건데요?"
라길래, 단호하게 내가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라고 외쳤다.....

오늘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슬그머니 내귀에 대고
"엄마,.. 기쁜 소식이 있어요.. 나 92점 맞았어요.. 하핫"

-_-;;;;;;;;;;;;;;;;;;

난 마구 설레발을 치면서 기쁜 척하며 칭찬을 해줬따.
아니 니가 웬일이냐!!!!!!!!!!!!!!!!!!!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아드님은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선언한건 잊었나보다. 같이 기뻐하며 넘어갔다.
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