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여사의 수다

봉고에 대한 추억

몽여사 2013. 4. 16. 18:57

문득 생각난 나의 고교시절, 그 시절 우리는, 새벽같이 학교 가고, 밤 늦게까지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했기 때문에,

차편이 원래도 변변치 않은 동네에서, 새벽이랑 밤늦게까지 공부하기 위해선 봉고차를 같은 방향 애들끼리 맞춰서 타고 다녔다.

밤 10시, 11시, 12시 되면 학생들을 태우러 온 각 동네 봉고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우린 어둠 속에서도 각자 봉고를 잘도 찾아서 지친 몸을 앉혔다.

 

그런데 그 봉고차를 간택할 때, 부모님이 나서서 해 주는 일 절대 없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다 선택하고 조율했다.

봉고차 아저씨 면접부터, 차량 상태까지 꼼꼼히 보고, 차를 타고 내리는 루트까지 우리가 다 짰다.

아저씨들은 그냥 우리랑 시간을 잘 맞추고 운전 잘 해 주시면 되었다.

한달에 한 번 아저씨께 드리는 비용은 "봉고비" 라고 불렀다.

 

맨처음 봉고차 운전은 부산대 학생이 했는데,

젊은 오빠라 좋았지만, 가끔 데모하느라 안 오고 그래서 몇달 안에 우리가 잘랐다.

두번째 아저씨는 꽤 오래 하셨는데, 차가 너무 낡고 아저씨가 우리 떠든다고 잔소리가 심해서 또 바이바이 했었다.(잘랐는지, 아저씨가 못하겠다 하셨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마지막 봉고가 제일 만족도가 높았는데, 고3 졸업할 때까지 타고 다녔다.

그 봉고는 당시에 나온 봉고류..중에 제일 신종인 미니버스였고,(스타렉스 같은 뭐 그런거...)

그리고 운전사 아저씨도 우리 학교 학생의 오빤가 삼촌인가 그랬던 것 같고, 매우 친절하셨고, 우리가 떠들어도 암말도 안 하고 맞장구 쳐 주셨다.

가끔 시험이 끝난 토욜 같은 때는 우리가 단체로 아우성치면 해운대 같은 데 가서 바람도 쐬게 해 주셨다.

 

봉고 같이 타는 애들 중에 누구 하나 먼저 집에 가거나 하면, 꼭 같은 봉고 멤버에게 연락하고 가야 한다.

선생님 몰래 튀는 일은 있어도, 봉고 멤버 몰래 튀는 일은 없었다. 말 안 하고 빠지게 되면, 운행에 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 봉고 멤버들이 누구보다도 끈끈했다.

같은 반이 아니어도, 같은 동네였고, 아침 저녁으로 헝클어진 모양새를 다 보고 지냈으므로...

 

저녁밥 짓다가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서 글을 적었다.

그 친구들 다들 뭐하고 살까..

 

우리는 그 때 이미 어른이었고, 모든 우리에 관한 일을 선택하고 재단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근데, 요즘 애들은 그런거에 비하면, 너무 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