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뒷담화

자화상과 참회록

몽여사 2014. 10. 13. 16:12

오늘 이 시를 떠올릴 상황이 내게 있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윤동주 시를 찾아 읽었다.

이렇게 이 시가 내 가슴을 파고 드는 날이 있다니.... 나도 다 컸다.. 하하하하하...


언니 왈, "우리 같은 인간도 솔찮이 있는겨..." 

맞아..

이 시를 읽으며 나의 속물근성에 비웃음을 날리고, 이유 있는 자괴감을 잠시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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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懺悔錄)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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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自畵像)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