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영화, 졸업 작품, 2천만 원 저예산 영화, 게다가 군대 얘기. 이 모든 수식어의 선입견과 달리 <용서받지 못한 자>는 흥미진진한 탐험 영화다. 군대 안으로 직접 들어가 끄집어낸 생생한 군대 이야기, 그로부터 시작되는 우리 사회에 대한 고찰이 놀랍다. 영화를 만든 스물일곱 윤종빈 감독과 두 주연배우 하정우, 서장원에게 3자 대담을 청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를 설명하는 일은 쉽다. 딱 한마디, 군대 얘기다. 술자리든 어디서든 군대 얘기에 시달려본 이들은 알 것이다. 그토록 많은 남자들이 각기 다른 곳에서 다른 기간 동안 다른 직책으로 군 복무를 했건만, 남는 얘기란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같은지. 군대란 아무리 편한 보직이라도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아무리 힘겨운 사건이라도 무감각하게 만드는 곳일까. 세상과 격리된 2년여를 보내고 다시 사회로 돌아온 남자들은 기억을 왜곡하고 정당화해 자신의 군대 경험을 세상의 말들에 편입시킨다. 군대에서 그들은 낯선 문화에 당황했고 여름과 겨울마다 세상에 둘도 없을 고초를 겪었으며 말 안 듣는 후임의 군기를 잡고 치졸한 고참의 비위를 맞춰야 했으나, 결국 제대할 때엔 남자다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이토록 하고 많은 군대 얘기 중 보편성과 특수성을 각각 추렸다.
영화 속 군대엔 현실처럼 다양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괴롭히는 선임과 괴롭힘을 당하는 후임이 있고, 적응하는 군인과 겉도는 군인이 있으며, 심술맞지만 속마음은 무른 고참과 엄격하지만 너그러운 장교, 어딘가 모자란 듯 어리숙한 신참이 모두 있다. 비단 군대가 아니더라도 질서를 세우려는 조직이라면 어디든 있는 전형적인 인물들. 맞아 저런 사람이 꼭 있지, 무릎을 칠 무렵 그들의 이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두 주인공 태정(하정우)과 승영(서장원)은 정반대의 인물이다. 일찌감치 군대에 들어와 능숙하게 적응하고 편안한 말년을 기다리던 태정은 갓 입대한 중학교 동창 승영과 함께 군 생활을 하게 된다. 털털하고 넉살 좋은 태정은 반가운 마음이 앞서지만, 아무리 배려해주려 애써도 승영은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질문보다 복종이, 논리보다 명령이 앞서는 군대라는 조직을 승영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고집 세게 버티는 그 때문에 두 사람 모두 난감한 상황을 맞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태정은 제대한다. 군대 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태정에게 어느 날 승영은 휴가를 나왔다며 전화를 건다. 할 말이 있다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심상찮지만, 태정은 군인 친구보다 토라진 여자 친구에게 신경이 쓰인다. 태정이 알지 못하는 승영의 지난 군대 생활이 사이사이 겹쳐지면서 이야기는 비극으로 흘러간다. 군대 안에서 이미 일어난 비극이 있고, 막을 수 있었으나 막지 못했던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군대 얘기’로 시작됐던 이 영화는 군대 질서가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가부장적, 남성적, 폭력적 일상으로 번져간다.
1. 군대,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FILM2.0 군대는 다녀왔냐는 질문, 참 많이 받았겠다. 윤종빈 감독 그렇다. 나와 하정우 씨는 현역 제대했다. 서장원 나는 면제다.
FILM2.0 <용서받지 못한 자>를 군대 얘기로 한정 지을 순 없지만, 대한민국 남자의 90%가 거쳐온 곳이다 보니 영화를 보면 자연스레 군대 경험을 묻게 된다. 더구나 제대 직후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던데. 윤종빈 감독 군대라는 건 한국 남자에게 일종의 2차 사춘기다. 이른바 어른이 되는 과정, 사회화되는 과정이다. 군대에 가보니 우리 사회에 대해 막연히 불만과 비판을 갖게 됐던 원인이 바로 여기 있었구나 느끼게 됐다. 군대 질서가 바깥에도 고스란히 존재하고, 제대하면 나 또한 그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다. 내 모습을 돌아보면서 내게도 이 군대 속과 같은 모습이 있지 않나 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사회화되고 성장해간다는 것이 과연 잘살고 있는 건가 묻게 되고. 그렇게 시나리오를 썼다. 하정우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만 막상 군대에 가면 사회에 있을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제대한 후엔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 질서에 익숙해진다.
FILM2.0 서장원 씨는 처음 군대 체험을 해본 셈인데, 영화를 통해 경험한 과정이 어땠나? 서장원 힘들었다.
FILM2.0 그 뿐인가? 하정우 이 친구가 원래 과묵하다.(웃음) 윤종빈 감독 말이 없으면서도 속을 알 수 없고, 애 같으면서도 신중해 보이는 것이 처음 봤을 때부터 극중 이미지에 꼭 맞겠다 싶었다.
FILM2.0 아닌 게 아니라 극중 승영 캐릭터와 비슷하다. 배우의 실제 성격을 캐릭터에 반영한 부분이 있나? 윤종빈 감독 장원이는 거의 비슷한데 대사를 더 줄였다. 하정우 씨는 군대에서의 모습이 더 멋있어졌고.
FILM2.0 원래는 어땠길래? 윤종빈 감독 당초 태정은 군대 안에서 더 폭력적인 인물로 묘사됐었다. 하지만 나중엔그보다 수위를 낮추고, 군대 안에서 적당히 적응한 인물로 그렸다.
하정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한 친구가 있었다. 학교 안에서 교복 입고 있을 때는 정말 멋있고 남자다웠는데 대학 가서 만나니까 옷도 정말 바보처럼 입고 행동도 그런 거다.(웃음) 군대에서도 정말 멋진 사람이라 생각한 고참이 있었는데 휴가 나와 보니까 말 그대로 병신이었다. 그런 경험에서 시작했다. 조직 사회의 질서 안에 있을 때는 그것이 잘 맞고 어울리지만 그 규율에서 떨어져나와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외적인 부분부터 고민한 거다. 감독도 그런 힌트를 많이 줬다. 제대 후 승영과 만나는 장면을 위해 거의 30벌의 옷을 가져갔는데 그중에서 굳이 나에게 안 어울리는 파란색 옷이랑 청바지를 고르더라. 그것도 꼭 접어 입어야 한다고.(웃음) 윤종빈 감독 파란색 옷을 입힌 것도 그런 이유다. 하정우 씨는 파란색을 입으면 우유부단하고 초라해 보인다. 군대 안에서 보였던 멋있는 느낌을 깎아내야겠다 싶어서 덜 떨어져 보이도록 한 거다. 서장원 승영은 여린 인물이기 때문에 목소리도 아이 같고 여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 목소리보다 톤을 높였다. 처음에는 바짝 긴장해 있고 군대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승영도 오묘하게 변하지 않나. 군대 문화를 바꾸겠다고 장담했지만 태정이 제대한 후엔 오히려 상사들에게 적당히 뇌물도 바칠 줄 알고 신참에게 소리도 지르게 되는, 태정과 같은 모습으로 바뀐다. 스스로는 부정하지만 승영에게 유태정은 우상이었을 수도 있다. 유태정은 군대 내에선 누가 봐도 멋있는 인물이니까.
FILM2.0 감독도 직접 허지훈 역으로 출연했다. 처음부터 그 역할을 맡을 생각이었나? 윤종빈 감독 그렇다.처음엔 다 반대했다. 절대 안 어울린다고.(웃음) 하지만 군인처럼 보이는 건 쉽다. 군복을 입고 머리를 자르고 나타나니 다들 잘 어울린다던 걸. 사실 아무리 멋진 사람도 군복을 입으면 다 똑같게 보인다. 훈련소 때 사진을 다시 보면 정말 우스꽝스럽다. 군복 바지에 녹색 런닝을 입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FILM2.0 그러나 군대 안에 있다 보면 그런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여기지 않게 된다. 그래서 열심히 바지에 주름도 잡고, 극중에도 나오듯 구두광을 내는 데 집착하는 거 아닌가. 윤종빈 감독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으니까 광이 발생하는 거야”라는 극중 대사는 실제 군대에서 들은 얘기다. 그 말 자체는 전혀 말이 안 되지만 열심히 설명을 하는 게 우습지만 인상적이었다. 자기도 모르면서장원 그렇다고 하니까 그대로 말하는 거, 군대의 특징이다. 하정우 나도 군대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다. 물광 얘기는 처음 들으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겪어보면 그게 군대라는 걸 알게 된다.
FILM2.0 서장원 씨는 군대 경험 자체가 없으니 그런 비논리가 낯설었을 법도 한데. 하정우 승영 연기를 하는 데는 군대를 모르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됐을 거다. 서장원 아예 군대를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군대에 대해선 남들처럼 부정적 생각만 갖고 있었다. 승영의 입장을 이해할 땐 그 편이 쉬웠다. 낯선 군대라는 곳에 들어가 적응하지 못하는 걸 표현하기에는. 물론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도움을 받았다. 특히 군대 말투는 과외도 받았지. 하정우 군대 말이 의외로 어렵다. 이른바 ‘다나카’라고 하지 않나. ~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까? 등등. 리듬이 있어야 한다. 처음엔 그 말이 어색하다. 계속 쓰다 보면 사회에 나와서도 그런 말투를 쓰게 된다. 그 외에도 군대 안의 이상한 질서는 한두 개가 아니다. 군대 안에서는 이등병이 절대 혼자 다닐 수 없다. 바로 윗고참이 이등병들 손을 잡고 다닌다. 영화 속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나.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그런 디테일에 웃으면서도 잊고 있었던 군대 생각을 다시 하게 될 거다. 신발을 벗고 침상 위에 올라갈 때도 그냥 올라가면 안 된다. 앉고, 신발을 벗고, 다시 몸을 돌려서 올라가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슬리퍼 정리하는 방법, 청소하는 방법, 팬티 검사하는 장면도 영화에 나온다.
FILM2.0 그건 성희롱 아닌가? 하정우 실제 군대에서는 더 심하다. 거기에 무감각해지는 게 군대다.
FILM2.0 게다가 영화 속엔 어렴풋이 동성애 코드도 함축돼 있다. 군대라는 소재의 화제성만큼이나 그런 묘사들이 논란을 부를 수도 있을 텐데. 윤종빈 감독 보통 남자와 남자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은 극단적이다. 사나이들의 우정, 아니면 명백한 동성애.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거든. 친구들 관계에도 그런 양극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이 존재하고 성적 매력도 작용하기 마련이다. 기존 영화들이 다루는 관계에 대한 편협한 관점과는 다른 걸 보이고 싶었다.
FILM2.0 이를테면 여고생들 사이의 우정도 사랑도 아닌 모호한 감정 같은 것? 윤종빈 감독 그렇다. 남자들도 똑같다. 우리는 친구 아이가, 하는 방식이 싫었다. 오히려 남자들만 있는 집단 안에서는 더욱 복잡한 감정과 관계가 생길 수 있는데 군대 질서는 그것을 가로막는다.
2. 내무반에서 영화 만들기
FILM2.0 시나리오 쓴 건 2년 전이라고? 윤종빈 감독 2003년 11월이었다. 제대하고 나서 바로. 촬영은 2004년 6월 말쯤 시작했는데 3, 4월부터 배우들과 계속 만났다. 하정우 처음 받았던 건 단편 시나리오였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은 우유부단하고 인간적인 태정이라는 인물에 공감이 갔고, 군대 경험을 반추하게 됐다. 보자마자 자신 있었다. 서장원 처음에 나도 단편 버전을 받았다. 처음엔 동성애 코드가 먼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매력 있는 역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을 만나면서 군대에 대해, 두 인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FILM2.0 단편에서 장편으로 바뀐 건 캐스팅 이후인가? 윤종빈 감독 캐스팅한 후에 배우들을 만나면서 결정한 거다. 사실 단편 시나리오 줬을 때부터 나는 장편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 처음부터 장편이라고 하면 스탭들이 도망갈까봐 두 개의 카드를 들고 언제쯤 얘기할까 계속 타이밍을 본 거다.(웃음) 단편으로 끝내기에는 이야기가 아까웠다. 짧은 길이에 담다 보니 아무래도 도식적인 부분이 많았다. 인물도 피해자 가해자가 확실히 구분되고 다층적인 걸 보여 주지 못했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았다. 하정우 어쩐지 그 짧은 시간에 장편을 다시 썼다는 게 수상하더라.(웃음)
FILM2.0 디지털 작업은 처음인가? 윤종빈 감독 그렇다. 이전에는 필름으로만 작업했다. 필름보다 아쉬운 점은 많지. 하지만 걱정 안하고 많이 찍을 수 있다는 건 좋았다. 하정우 나도 단편 영화를 찍어봐서 알지만, 저예산이나 단편영화에선 아무래도 필름 많이 쓰는 걸 신경쓰게 된다. 부담감을 안고 촬영에 들어가면 자유롭지 못한 점도 생기고. 이번엔 장면 장면마다 얼마나 테이크를 많이 갔는지… 터널을 혼자 걸어가는 건 40번, 육교 위에서 승영과 태정이 만나는 장면은 37번 찍었다. 덕분에 장원이는 담배를 37개피 피웠지. 서장원 담배는 괜찮았다. 커피 수십 잔 먹는 건 힘들었지만. 하정우 커피만 있었나, 아이스크림 먹는 장면에선 12개 먹었다. 여름이고 너무 더워 처음에는 맛있었는데, 나는 조스바, 장원이는 스크루바를 먹다 보니 둘 다 입술이 파랗고 빨갛게 변하는 거다. 닦아내고 또 닦아내면서 촬영했다.
FILM2.0 꼼꼼하다고 해야 할지 독하다고 해야 할지. 그 정도면 스탭이나 배우들이 진저리치기 마련인데? 하정우 짜증이 났다 풀리고 이게 반복이 되다 보니까 나중에는 체념하는 거다. 매번 30번 찍다가 20번 찍으면 오늘은 일찍 끝났구나 좋아하게 되고.(웃음) 하지만 상업 영화 현장과 다르게 외부적인 압력이 없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어 자유로웠다. 사실 상업 영화였다면 이런 소재를 다루지도 못했겠지. 그러다 보니 친구처럼 친해졌다.
FILM2.0 서장원 씨는 두 사람과 나이 차이가 나서 어렵기도 했겠다. 서장원 근데 그게 더 좋았다. 긴장을 하게 되고. 하정우 우리 학풍이 그렇다. 연극과가 특히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다.
FILM2.0 선후배간의 위계 질서도 사실 군대 질서와 같은 맥락에서 비판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영화를 만들고 출연했다면 그런 질서를 강조하진 않을 것 같은데. 하정우, 서장원 다시 생각하게 되는 점은 확실히 있다. 윤종빈 감독 난 안 그런다(웃음). 촬영이 길어지면서 후배들에게 악마다, 피를 빨아먹는다 등등 별 소리를 다 듣긴 했지만.
FILM2.0 예산이 허락했다면 더 해보고 싶은 장면이 있나? 윤종빈 감독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군대의 분위기를 담고 싶었는데 인원이 모자라서 할 수 없었다. 군인들이 훈련받거나 총 쏘는 장면은 꼭 넣고 싶었는데. 액션이 들어가면 좋잖나. 이 영화에서 액션이라고는 농구하는 것밖에 없다.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한다는,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가 될까봐 농구로 바꿨다.(웃음) 아, 체조하는 장면도 찍었는데 편집에서 잘라냈다. 러닝 타임도 맞춰야 했으니까. 하정우 처음 나온 편집본은 170분 넘었다. 완전 작가영화였다.(웃음)
3. 우리들 안의 또 다른 군대
FILM2.0 지난 부산영화제에서 4개 부문 상을 휩쓸었다. 그야말로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윤종빈 감독 소재 때문인지 관객들 반응이 적극적인 것에 놀랐다.
FILM2.0 하지만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주로 군대에서의 실제 경험담 등 군대 문제에 초점이 맞춰진 질문이 많았다. 이 영화를 통해 묻고 싶었던 건 더 큰 문제일 텐데. 윤종빈 감독 우리 사회 얘기를 하고 싶었다. 이 곳에서 살아가는 남자들. 어른이, 남자가 되기를 강요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서장원 사실 처음엔 승영이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기하면서는 더 짜증났다. 하지만 그동안 승영이 겪어야 했던 일들을 생각하면 그런 모습들이 이해가 갔다. 군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늘 그런 억압을 겪으며 살아가니까. 윤종빈 감독 대부분의 남자들은 군대 생활 힘들게 만드는 승영 같은 인물을 싫어한다.(웃음) 남성적인 문화 안에서 승영과 같은 여성적 인물은 분명 귀찮고 성가신 존재일 테니. 성별에 따라, 경험에 따라, 이입하는 감정에 따라 성격에 따라 다 반응이 다르다. 영화가 어느 한쪽으로 몰아주질 않기 때문에 다들 각자 입장에서 보는 거지. 어떤 사람은 되게 승영을 싫어하고 태정에게 공감한다. 반면 여자들은 승영에게 감정 이입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FILM2.0 <용서받지 못한 자>에는 무거운 주제와 달리 일반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머 감각이 있다. 그건 명백히 대중적인 감성이다. 윤종빈 감독 처음부터 이 영화는 웃겨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관객들이 거리감을 갖지 않도록.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가장 강한 게 유머 아닌가.
FILM2.0 처음부터 대중 관객과의 만남을 염두에 뒀다는 말처럼 들린다. 윤종빈 감독 확실히 얘기하기는 힘든 부분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릴 줄은 몰랐지. 하지만 일반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다. 또 그것이 필요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군대 얘기를 하고, 누구나 군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진짜 군대에 대해서는 제대하자마자 잊고 싶어 한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더라도 군대 질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과 정면으로 맞서긴 어렵다. 상업 영화도 아니고 배우나 스탭들에게 충분히 돈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명분이 있어야지 않겠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이거 졸업 영화 아니다, 학생 영화 아니다, 반드시 잘될 거고 잘돼야 하는 중요한 얘기라고 강조하면서 시작했다. 하정우 이런 생각을 배우들도 같이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거 같다.
FILM2.0 사실 졸업 작품은 대부분 기술적 미완성을 눈감고 넘어가거나 일종의 포트폴리오로 생각하고 만드는 경향도 많은데. 윤종빈 감독 그런 건 말이 안 된다. 학생 영화라고 해서 봐달라고 할 수 있나. 바깥에 나가면 20억짜리 영화든 2천만 원짜리 영화든 다 똑같은 하나의 영화인 거 아닌가. 그런 마인드로 어떻게 1년 6개월 동안 영화를 찍었겠나. 그런 생각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최고로 만들겠다, 프로로 일하자, 그런 생각만 했다.
FILM2.0 촬영이 완료되고나서 금방 극장 배급이 결정됐다고? 윤종빈 감독 지도 교수였던 이현승 감독님이 완성된 영화를 보고 극장 배급을 해보자고 하셨다. 배급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님을 소개받았고, 배급이 결정된 건 올해 3월이다.
FILM2.0 흔히들 군대 갔다 오면 사람 된다고 한다. 군대에 다녀와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게 됐다니, 과연 어떤 사람이 된 걸까?(웃음) 윤종빈 감독 사람 된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과연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 거다. 태정과 승영도 어떤 면에서는 전형적인 인물이지만, 그들에게도 군대를 통해 변화가 일어난다. 보통 다른 영화에선 한 인물에 한 가지 측면만을 보여 주지 않나. 태정은 사람좋은 사람, 승영은 반항적인 인물, 이렇게 규정을 내리는 거지. 하지만 우리 영화에선 이들 모두가 조금씩 변해간다. 승영은 군대 문화에 저항하는 용기가 있지만 그 방식은 좀 짜증나고 집요하다. 흔히 사회 저항적인 인물은 굉장히 멋있게 그려지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사람들은 별로 멋있지 않다. 피곤하다. 태정은 어디서든 잘 적응하는 여유 있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늘 옳은 건 아니다. 내가 보아 온 그대로의 사람들을 이 영화에서 그렸다. 우리가 잊고 사는 현실을 담았다. 그것이 관객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 고아영 기자
출처 : FILM2.0 기사 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33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