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여사의 수다

나는 없다.

몽여사 2008. 4. 1. 17:47

제발 지금 내 위치를 깨닫자.
내가 지금 번듯한 직장인도 아니고, 나는 주부다 주부.
그것도 초등학교 갓 입학한 아이와 이제 기기 시작한 갓난 아기의 엄마인 것이다.
나는 어디 있나, 내 시간은 하나도 없다, 그런 불평들은 삭혀 버리자.
당분간 나는 없다고 생각하자.
애들을 위해 살아보자.

.....

뭐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애들만을 위해 사는 엄마들, 대단하고 부럽다.
그런데 내가 그걸 하려니깐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

오늘 점심 시간에 둥이가 표독이 옷 준다고 해서 표독이는 박서방한테 맡겨두고 잠시 밖에 나가서 점심 먹고 차 한 잔 마시는데, 몽치랑 같이 영어 하는 L양의 엄마 전화가 모르는 사이에 3통이나 왔더라.
오늘 처음 급식하고 방과후 학습하는 날이라, 그 엄마가 애들 다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영어시킨다고 하셨는데, 전화가 와 있어서 놀래서 전화를 했더니, 그 엄마 목소리에 힘 하나 없이, 오늘 몽치 때문에 엄청 놀랬다고 한다.
분명히 L양과 같이 방과후 수업을 했던 아이가 눈 깜짝할 새에 없어졌더라는 것이다.
강당을 서너번 오르락내리락하며 찾았지만 애가 없어서, 자기네 애 둘 폴리스 엄마한테 맡겨두고 집으로 와보니, 우리 아드님이 그 집 앞에서 샥 나타나더라는 것이다.
수십번 L양과 L양의 엄마랑 같이 하교하라고 일렀건만, 그새 잠시 까먹었단다.

물론 사건은 잠시의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30여분 동안 간이 쫄았을 L양의 엄마를 생각하니 너무도 미안하여, 급히 간식을 사가지구 헥헥거리며 그 집으로 가서 여러번 고맙다고 인사하고 애들 간식 먹여 집으로 왔다.
그래도 그 엄마는 여전히 밝고 명랑하더라. 그 명랑함과 씩씩함이 부럽더라.

집에 오니, 표독이는 엄마 엄마 외치며 나를 찾고 있었다.

그래, 내가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애들 엄마 이상의 자리가 있겄나.
그냥 당분간 참고, 애들이나 잘 키우자.

오늘 수십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