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등교길
등교 전쟁이 좀 진정되나~ 싶었는데...
오늘 8시 45분경 또 따르르~ㅇ 전화가 울린다.
'우리집 학교 통신' 이 전화 거셨다.
(*우리집 학교 통신이란, 학교 근처에 사시는 L양 엄마다)
L양의 엄마는 워낙 평소에 오지랖이 넓으신데다가 친하다 생각하는 애 엄마들에겐 더욱더 신경을 써주시는 바람에, 매일매일 나에게 온갖 소식을 물어다 주고, "너네 아들이 지금 학교가더라, 너네 아들이 오늘 학교에서 뭐뭐 어떻게 하더라" 라고 따끈따끈한 아들 속보를 전해준다. 그리고 내가 급식당번이다 청소당번이다 해서 학교 갈 때마다 그 엄마를 안 본 적이 없으니, 그 엄마는 아마 학교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그 아줌마가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를 걸어서는 댁의 아드님이 학교에 거의 지각할 것 같이 늦게 가길래, 자기가 같이 가방 들고 뛰어줬다는 것이다.
우리 아드님은 오늘 12분에 앞집 C양을 만나서 걸어가는 것을 목격한 나로서는 의외였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대응했다.
나 : 아니, 왜그랬을까요? 일찍 나갔는데?
L양 엄마 : 그러게요, C는 안 보이고, 몽치만 우리집 앞을 힘없이 걸어가길래, 일단 제가 같이 데려다 주면서 너 지각이야~ 하며 물어봤더니, C양은 저 밑 다른 길로 간다고 하더라구요.
나 : 어머, 걔네 왜 그럴까요? 분명 같이 갔는데...
L양 엄마 : 그게 말이죠, 몽치가 시무룩하게 대답하는 말이, C가 공원 철망에 거미줄을 뜯어내며 구경하느라 늦장을 부려서 늦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몽치가 화가 나서 따로 가는 듯 했어요.
나 : 아항.. 그렇군요
L양 엄마 : 오늘 제일 늦었다구요... C랑 보내지 마시지 그러세요. 다른 엄마들도 다들 너무 늦었다고 놀라던데. 그리고 C가 산만하기로 소문 나서, 다른 엄마들도 같이 보내지 말라고 난리예요!!
나 : 뭐, 맨날 늦는 것도 아니구요. 어쩌다 한 번 그랬겠죠. 그리고 그 정도는 지가 카바해야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제가 코치를 하겠어요?
L양 엄마 :(살짝 당황하며) 엄머,.. 이제 초월했구나?
나 : ㅎㅎㅎ 뭐 초월했다기보다는, 같이 가는 친구가 늦장을 부리며 그러고 있으면 설득해서 가는 것도 그 나이쯤이면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내비두세요. 그리고 같이 데려다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날씨도 좋고, 그동안 추워서 움츠려 등교하던 놈들이 날이 또 살짝 풀리니깐 딴 생각이 난 거겠지.
안 그래도 산만하기로 유명한 C양이 그냥 곧장 가지 않은 건 안 봐도 비됴구.
몽치 아범에게 오늘 아드님 오시면 좀 단단히 일러주라고 한마디 해 줬다.
어쩌겠어... 저러다 철 들겄지 뭐.
나도 이제 좀 단념이 되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