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책(The Book of Illusions) - 폴 오스터
2002년,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그런 책이 있다. 우연히 읽게 되어서 그 작가의 책은 다 뒤져 읽고 싶은 맘이 들게 하는.
폴 오스터의 책 중에 "뉴욕 3부작'과 '달의 궁전'을 읽어 보리라 맘 먹고 장바구니에 넣어 놓은지 꽤 되었을 때, 종민엄마로부터 종민 아버님께서 적극 추천하셨다는 이 책을 받아 보았다.
빌려 놓고 또 며칠 책상 위에 널부러져 있던 책을 집어 들고선 처음 몇장을 후다닥 읽어 치웠다. 그 뒤로 "헥터 만"의 무성영화를 묘사해 놓은 부분이 시작되자 조금 지루해 지면서 - 사실 이 책에서 왜 그렇게 헥터 만의 무성영화를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는지 그 땐 잘 이해가 안 되었기에 - 또 며칠을 책은 내 화장대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요 며칠 텔레비젼도 시들하고, 맘도 우울하여 집어들어 3일만에 두꺼운 책을 독파했다.
읽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폴 오스터의 책을 죄다 찾아서 장바구니에 집어 넣는 일이었다.
내가 꼭 다 읽고 말리라! 라고 부르짖으며.
어떤 책을 읽고 나서는 다시는 그 작가의 책은 읽고 싶지 않게 구미가 떨어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 최근에 읽었던 온다 리쿠의 책은 너무도 내 스타일이 아니라 다시금 읽고 싶지 않게 되었음 - 이렇게 폴 오스터처럼 온갖 책을 다 읽어보고 싶고,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시시콜콜 알게 되고 싶은 책도 있더라.
찾아 보니, 폴 오스터는 이 책에 나오는 무성영화 배우 헥터 만이 이렇게 생겼지 않을까 싶게 이국적으로 선이 굵은 미남이다.
그리고 또 놀란 것은 그가 내가 오래 전에 보았던 웨인 왕의 "스모크" 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이었다.
이미 그 영화는 내 뇌리에서 가물 가물 지워진 지 오래였으나 분명 나는 극장에서 그 영화를 봤고, 매우 독특한 소재와 서술기법으로 풀어가는 영화였다는 기억이 난다. 다만, 나는 웨인 왕의 스타일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열렬히 그 영화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뿐.
폴 오스터는 지금 현재 미국에서 가장 극찬을 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고, 실제로 영화 시나리오 작업도 많이 하고 있다는구만. 몰랐어 몰랐어.. 왜 몰랐을까.
이제라도 알았으니 기쁘기 짝이 없다.
책을 빌려 주신 종민 아버님+ 어머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처음 폴 오스터의 책을 추천해 주신 몽치이모님의 탁월한 선택도 감사함. 역시.. 언니는 내 정서와 맞다니깐 ㅋㅋㅋ. 자매란 이럴 때 정말 영혼의 동반자로서 손색이 없어. 남편과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영혼의 고양!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진 않았고.
또 검색을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은 이 책의 종반 부분에 나오는, 그러니깐 헥터 만이 숨어 지내면서 찍었던 영화 중의 한 편으로 소개된 "마틴 프로스트의 내면의 삶" 이라는 책이 얼마전에 실제로 또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오호.. 이거 정말 재미있군.
이 책의 역자가 언급했던 것처럼, 폴 오스터는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영화들을 마치 자신이 진짜로 본 듯이 자세하고 섬세하게 묘사해 두었는데, 그것이 책을 읽어가면 읽을 수록 정말 실제 이런 영화가 있는 것은 아닐까? 헥터 만이라는 배우는 정말 실존했던 배우는 아니었을까? 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재주가 있었는데, 그것이 모두 그가 정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그는 허구 속의 현실을 만들어 내는 마술사 같다고나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 번 감탄한 것은, 어쩜 이런 소재를 아니, 이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어떤 소설에서도 보지 못했던 그런 얘기를 폴 오스터는 너무도 진실되고 아름다운 문체로 서술해 나가는 것이었다.(물론 원문으로 읽지 못하여 실제 그의 문체가 아름다운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역자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점에서.)
계속 읽고 싶다. 계속. 그의 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