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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여사의 수다 2009. 5. 25. 09:43

성찰 없는 권력의 가학성 - 홍세화 칼럼

살아 있는 권력의 가학성 앞에 죽은 권력이 죽음으로 응답했다. 성찰할 줄 모르는 권력이 성찰과 비판을 죽이는 시대를 반영하는가. 온건한 나라, 정상적인 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참담한 일이다. 실상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말뿐이었다. ‘잃어버린 10년’을 내세우며 앞선 정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새 정권과, 새 정권의 충견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 검찰에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애초 기대할 수 없었다. 검찰은 가학성에서 하이에나 같은 족벌언론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인가, 그들은 직접 추궁하는 대신 언론에 연일 수사기록을 흘리는 행위를 예우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모든 권력이 위험하지만,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그만큼 더 위험하다. 자성할 줄 모르고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 휘두르는 칼날은 갈수록 무자비해지고 그 칼날에 당하는 상처의 아픔은 스스로 성찰하는 만큼, 또 자책하는 만큼 더 깊어진다. 이를 알 리 없는 ‘29만원 재산’의 전두환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꿋꿋하게 대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한다. 수많은 국민이 아쉬움보다 비통함에 젖는 것은 그런 차이에서 온 것이리라.

촛불의 힘이 잦아들자 언제 머리 숙여 사과했더냐 하는 식으로 진정한 자기반성을 보여주지 않는 이명박 정권은 수구족벌언론에 힘입어 언론권력으로부터도 별로 견제되지 않는다. 국민으로부터의 견제와 비판이 남아 있지만 이는 검·경의 공권력을 동원하여 막으면 된다. 촛불집회와 언론소비자운동에 대한 집요한 수사, 미네르바 구속, 피디수첩 관련자 체포, 정연주 <한국방송>(KBS) 사장 사건 등에서 이 나라 검찰은 정치 검찰의 성격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막가자는 거지요!”는 과거 한때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벌어지는 현실이다.

.....<하략>

5/25일 한겨레신문 홍세화 칼럼 전문 보기




올해 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을 잠을 자지 않고 새벽녘까지 눈을 부릅뜨고 보았었다.
취임식장 전체를 메우고, 강 건너까지 빼곡히 모여 들어서 눈물과 함박웃음으로 그의 취임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미국 국민들을 보며, 우리는 언제 저런 행복을 느껴보나 한없이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가만히 되돌아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행복한 순간이 있긴 있었나보다.
2002년 12월의 어느날,
나는 그의 당선소식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맞이하였다.
6시 정각, 모든 방송사의 출구조사에서 그가 당선될 것임을 예고하는 글이 커다랗게 도장 찍은 듯이 나왔을 때, 나는 공항 대기실에서 혼자 팔짝 뛰어올랐다.
나는 그보다는 조금 더 비타협적인 후보에게 표를 주었지만, 그가 꼭 당선되기를 진심으로 바랬었다. 그가 그 때는 "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수년 동안 나는 그에게 실망하고 그를 미워하고 질타했다.

그런데 지금은 한없이 슬프다.

소나기가 온 뒤의 숲은 너무도 상쾌하고 싱그러웠고,
그 속에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하게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 있고 그는 스스로 떠났다.
나는 먹고 마시고 웃고 자고 떠든다.
그리고 자연은 참 아릅답구나 새삼 느끼며 길을 걸었다.

삶과 죽음은 모두 자연의 한 조각....





Posted by 몽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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